오늘의 역사 뉴욕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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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종 집사, 초대 목사: 김윤뮨 목사, 윤 윤영 집사, 박복란 사모 (목사). 우리교회 여선교회 회장 (사모).
뉴욕 지하철이 오늘 개통한 날 입니다. 10월 9일 우리나라의 “한글날” 과 같은 날 이지요.
내가 태어난 부산에는, 기억에 따르면 서울 성남에 위치한 공수 특수전 사령부에서 근무를 할 때 지하철이 생겨서(1985년) 그 당시. 그 지하철을 시승 해보려고 부산에 내려간 기억이 난다. 그전에만 해도 서울. 인천 왔다 갔다 할때는, 삼화 고속, 한진고속을 . 동인천 역앞에서 타고, 서울역 앞. 길건너 에서 타고, 줄서고 그랬던 기억이 새삼 다시 난다. 가끔 기차를 타고 가면, 아주 옛날 에 있었던 “비들기 호” 열차다. 이름이 왜 비들기 호 가 되었는지? 나중에 Internet 에서 조사를 해보면 알것 같다. 누구 말 따나 “조사 하면 다 ~ 나와 “ 그러시던데. 그 기차는 사이몬(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이니까 아마 1990년도 에 마지막으로 .. 영원히 없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둘이 서 한국 여행을 가서,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에서 전주 까지 가고? 광주 였던가? 둘이 흑산도. 백도 관광 간다고. 전라도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여수 까지 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탄 기차가 바로 역사의 흐름 으로 사라져 버린 비들기 호다. 이야기 가 잠깐 삼천포로 빠져 버렸는데. 우리나라의 최초의 지하철은 경인선 이다.
육영수 여사가 저격된해. 이때는 서울 용산 미 8군 안에 위치한 미 육군 병원 (121st Evacuation Hospital) 에 근무할때 인천 ß -à 서울 에 지하철이 개통 되었다 그러니까, 부산보다10년 정도 이른 1974년에 개통되었다.
샌프란시시코에 1903년에 대(大) 지진이 나서, 도시 전체를 빗자루 쓸듯이 싹슬히
다음해… 뉴욕에서 지하철을 개통했다. 그 당시 내가 태어나지 안해서 그런지? 별로 느낌도 없다. 그리고생긴지 109년이 넘는다는 사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뉴욕의 지하철(공식적으로는 1904년)이그러나 딱 109년 전 뉴욕은 몰려드는 이민자와, 세계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은 필요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때 지하철이 생기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런던이나 파리는 그 전에 생겼으니까) 다음 간단한 뉴욕 지하철의 역사는 위키피디아의 뉴욕 지하철 역사 페이지를 나름대로 편역해본 것이다
위키페디아
뉴욕지하철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New_York_City_Subway
지하철
이전의
고가철도들
지하철의 전신은 지상위를 다니는 고가철도다. 최초로 뉴욕 시내를 관통하는(Greenwich Street과 Ninth Avenue) 증기 기관차가 다니는 고가철도는 1867년에 지어졌다. 그 전의 대중 교탄수단은 지상 위를 달리는 케이블 카가 주요 이동수단이었다. 첫 고가도로의 개통 이후로 2번가 3번가 6번가 라인이 지어졌다. 뉴욕에서 지금 이 고가 철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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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지금 이 고가 철도는 찾아볼 수 없지만 최초의 지하철인 IRT(Interborough Rapid Transit Company )시스템의 트랙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았다.한편 Kings County(뉴욕 시내가 아닌 브루클린과 윌리암즈버그)에도 몇몇 회사에 의해 고가 철도가 지어지고 나중에 이 지역을 통과하는 BRT(Brooklyn Rapid Transit)/BMT(Brooklyn-Manhattan Transit Corporation)라인의 일부가 되어 재정비된다. 참고로 샌프란시스코 Bay Area 의 지하철은 BART (Bay Area Rapid Transit) 이라고 부른다. 뉴욕의 BRT 와 이름이 유사한것 같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 (Columbus Day) 콜럼버스 데이 휴일을 시작으로 또 파업 ( Strike) 를 한단다.
내가 사는 인근에 있는 BART 종점 “Dublin / Pleasanton”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정확하게 50분 뒤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청 역 (Civic Center) 에 도착한다.
나역시 2006년에 뉴저지 주 이턴타운 (Eaton Town) 에 위치한 Fort Monmouth 미 육군 자재 사령부, 전산실에서 근무할때, 이 뉴욕 지하철을 여러번 타 기억이 난다. 한국 방문하고. 또 다시 한국에서 뉴욕으로 올때도 Kennedy 국제 공항에서 내려서, 공항 Shuttle 기차타고 BRT . 뉴욕 지하철을 타고 . 맨하탄 Grand Station 에 와서, New Jesersy 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녔던 기억이 또 난다. 굉장히 지저분했던 열차라는 기억 밖에 안난다.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지하철하고. 초대 목사 김윤문 목사님과 . 사모님 사진을 왜 이곳에??
사진은 찍었고,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만날 기회도 없고.
목사님과 사모님 사진을 올리고. 뭐 특별히 할말도 없네요. 옛날 일이고, 옛날 사람 만나니 그저 마냥 좋기만 하지요. 몇 몇 안되는 가정이 모여서 . 1645 West Street, Concord Calif 미국 교회 소 기도실 (예배당이 아니고) 에서 예배를 드리고, 박복란 사모님이 풍금 반주 하시던 것이 바로 엇 그제 같은데. 벌써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 . 세월 빠릅니다. 1979년 저의 육군소위 임관식에도. 가족, 친척이 없던 저희 부부를 위해서. 저의 졸업식/임관식을 Fulton Street 에 위치한 University of San Francisco 에 오셔서, 저의 오른쪽 어께에 노란 소위 계급을 달았고, 왼쪽 어깨에는 사랑하는 신랑을 위해서, 고생 .고생 한 . 장군엄마가 노란 소위 계급을 달아주었던 기억이 아마 죽을때 까지 안 잊어 버릴것입니다. 신랑 장교 임관식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안해서, 박복란사모님과 둘이서 . 옷감 파는데 가서, 옷감을 사가지고, 사모님께서, 직접, 재단, 재봉, 손으로 바느질 해준것도 아마 죽을때 까지, 장군엄마나, 박복란 사모님도 못 잊으실겁니다. 끈적 끈적안 지인 관계를 아직도.
"Old Friends are like Antiques, They are to be Treasu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