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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뉴욕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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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2건 조회 13,374회 작성일 13-10-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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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종 집사,  초대 목사: 김윤뮨 목사,  윤 윤영 집사,  박복란 사모 (목사).   우리교회 여선교회 회장 (사모).  

뉴욕 지하철이 오늘 개통한 입니다.  10 9 우리나라의 한글날 같은 이지요.

내가 태어난 부산에는, 기억에 따르면 서울 성남에 위치한 공수 특수전 사령부에서 근무를 지하철이 생겨서(1985) 당시. 지하철을 시승 해보려고 부산에 내려간 기억이 난다. 그전에만 해도 서울. 인천 왔다 갔다 할때는, 삼화 고속, 한진고속을 .  동인천 역앞에서 타고, 서울역 .  길건너 에서   타고, 줄서고 그랬던 기억이 새삼  다시 난다.    가끔 기차를 타고 가면, 아주 옛날 있었던 비들기 열차다.   이름이 비들기 되었는지?   나중에 Internet  에서 조사를 해보면 알것 같다.      누구 따나  조사 하면  ~  나와     그러시던데.     기차는 사이몬(둘째 아들) 고등학교 졸업하던 이니까   아마 1990년도 마지막으로 ..  영원히 없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둘이      한국 여행을 가서,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에서 전주 까지 가고?  광주 였던가?   둘이 흑산도. 백도 관광 간다고.        전라도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여수 까지 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기차가   바로 역사의 흐름 으로 사라져 버린 비들기 호다.  이야기 잠깐 삼천포로 빠져 버렸는데.     우리나라의 최초의 지하철은 경인선 이다.

 육영수 여사가 저격된해.  이때는 서울 용산 8 안에 위치한 육군 병원 (121st Evacuation Hospital) 근무할때   인천 ß  -à  서울 지하철이 개통 되었다 그러니까, 부산보다10 정도 이른 1974년에 개통되었다.   

샌프란시시코에  1903년에 () 지진이 나서, 도시 전체를 빗자루 쓸듯이 싹슬히 다음해   뉴욕에서 지하철을 개통했다.  당시 내가 태어나지 안해서 그런지?   별로 느낌도 없다. 그리고생긴지 109년이 넘는다는 사실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뉴욕의 지하철(공식적으로는 1904)이그러나 109 뉴욕은 몰려드는 이민자와, 세계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은 필요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마련이기 때문에 지하철이 생기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런던이나 파리는 전에 생겼으니까) 다음 간단한 뉴욕 지하철의 역사는 위키피디아의 뉴욕 지하철 역사 페이지를 나름대로 편역해본 것이다

위키페디아 뉴욕지하철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New_York_City_Subway

지하철 이전의 고가철도들
지하철의 전신은 지상위를 다니는 고가철도다. 최초로 뉴욕 시내를 관통하는(Greenwich Street Ninth Avenue) 증기 기관차가 다니는 고가철도는 1867년에 지어졌다. 전의 대중 교탄수단은 지상 위를 달리는 케이블 카가 주요 이동수단이었다. 고가도로의 개통 이후로 2번가 3번가 6번가 라인이 지어졌다. 뉴욕에서 지금 고가 철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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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뉴욕에서 지금 이 고가 철도는 찾아볼 수 없지만 최초의 지하철인 IRT(Interborough Rapid Transit Company )시스템의 트랙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았다.한편 Kings County(뉴욕 시내가 아닌 브루클린과 윌리암즈버그)에도 몇몇 회사에 의해 고가 철도가 지어지고 나중에 이 지역을 통과하는 BRT(Brooklyn Rapid Transit)/BMT(Brooklyn-Manhattan Transit Corporation)라인의 일부가 되어 재정비된다.  참고로  샌프란시스코 Bay Area 의 지하철은 BART (Bay Area Rapid Transit) 이라고 부른다.  뉴욕의 BRT 와 이름이 유사한것 같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 (Columbus Day) 콜럼버스 데이 휴일을 시작으로 또 파업 ( Strike) 를 한단다.

내가 사는 인근에 있는 BART 종점 “Dublin / Pleasanton”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정확하게 50분 뒤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청 역 (Civic Center) 에 도착한다. 

나역시 2006년에 뉴저지 주 이턴타운 (Eaton Town) 에 위치한 Fort Monmouth 미 육군 자재 사령부, 전산실에서 근무할때, 이 뉴욕 지하철을 여러번 타 기억이 난다.  한국 방문하고.  또 다시 한국에서 뉴욕으로 올때도 Kennedy 국제 공항에서 내려서, 공항 Shuttle 기차타고 BRT .  뉴욕 지하철을 타고 . 맨하탄 Grand Station 에 와서, New Jesersy 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녔던 기억이 또 난다.  굉장히 지저분했던 열차라는 기억 밖에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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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지하철하고.  초대 목사 김윤문 목사님과 .  사모님 사진을 왜 이곳에??

사진은 찍었고,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만날 기회도 없고. 

목사님과 사모님 사진을 올리고.  뭐  특별히 할말도 없네요.  옛날 일이고,  옛날 사람 만나니 그저 마냥 좋기만 하지요.  몇 몇 안되는 가정이 모여서 .  1645 West Street, Concord Calif 미국 교회 소 기도실 (예배당이 아니고) 에서 예배를 드리고, 박복란 사모님이 풍금 반주 하시던 것이 바로 엇 그제 같은데.  벌써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 .  세월 빠릅니다.  1979년  저의 육군소위 임관식에도.  가족, 친척이 없던 저희 부부를 위해서.  저의 졸업식/임관식을 Fulton Street 에 위치한 University of San Francisco 에 오셔서, 저의 오른쪽 어께에 노란 소위 계급을 달았고, 왼쪽 어깨에는 사랑하는 신랑을 위해서, 고생 .고생 한 .  장군엄마가 노란 소위 계급을 달아주었던 기억이 아마 죽을때 까지 안 잊어 버릴것입니다.    신랑 장교 임관식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안해서,  박복란사모님과 둘이서 .  옷감 파는데 가서,  옷감을 사가지고, 사모님께서,  직접, 재단, 재봉, 손으로 바느질 해준것도 아마 죽을때 까지,  장군엄마나,  박복란 사모님도 못 잊으실겁니다.  끈적 끈적안 지인 관계를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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