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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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동생이 최근에 한국의 종교 인구 통계에 대한 기사를 전해 주었다. 한 때 25%까지 갔던 개신교 인구는 18%로 줄었고 과거 7% 정도였던 천주교는 급성장하여 11%까지 올라갔다. 프랜시스 교황의 방문으로 천주교의 성장세는 더 가파라졌다.
개신교의 교세는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 사는 분들 중에 한국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예배당 안에 노인들만 앉아 있고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 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기껏해야 20년)면 교회는 반쪽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가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한 당연한 일이다. 종교가 다수가 되어 돈과 권력을 가지게 되면 여지 없이 타락하게 되어 있다. 개신교회는 80년대의 전성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지난 30여년 동안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추문을 만들어 왔다. 초대형 교회들이 해체되지 않는 한 추문은 한 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개신교회에 몸 담았던 교인들이 믿음을 완전히 떠나지 않고 천주교회로 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과거에는 천주교회보다 개신교회가 더 매력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역전될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내 마음에 제일 중요한 요인으로 집히는 것이 있다.
천주교회는 말씀보다 예전이 중심이다. 미사 전체에서 강론이 차지하는 분량은 그리 크지 않다. 또한 강론도 교단 본부에서 준비한 원고를 부분 수정하여 읽는 경우가 많다. 강론은 전체 미사의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사실, 강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찬이다.
반면,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이다. 예배 전체가 말씀을 향해 있고 또한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설교에 의해 예배 경험 전체가 좌우된다.
과거에 개신교회가 대중에게 더 친근하고 유익했던 이유는 말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에는 목회자가 회중 가운데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 축에 들었다. 민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가 그만큼 중요했고 회중도 설교에서 여러 가지 유익을 얻었다. 먼 과거에는 설교가 민중을 계도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민도가 낮은 민중에게 천주교의 예전은 지루하고 불편했다. 그렇기에 천주교는 거북이 걸음을 했고 개신교회는 급성장을 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로 상황이 급변했다. 민도가 급상승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목회자가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대도시 교회에서는 교육 수준에 있어서 회중의 평균만도 못하게 되었다. 또한 80년대 이후에 신학교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로 인해 설교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존경과 신뢰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개신교 예배는 설교에 집중하기 때문에 설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전체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생각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교회에 등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민도가 높아지자 천주교의 예전이 생각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천주교회의 미사는 강론의 질로 인해 심하게 위협 받지 않는다. 강론에서 아무 은혜를 받지 못했다 해도 다른 예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생각있는 사람들이 개신교 예배가 아니라 천주교 미사를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개신교 목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절치부심 기도하고 연구하고 씨름하여 설교를 구해내는(redeem) 것이다. 복음은 이성을 넘어서는 경우는 있지만 이성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복음은 이성의 그릇으로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설교자는 영성과 함께 지성에 있어서도 부단히 자신을 가꾸어야 한다. 스스로 지성인임을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겸손히 경청할 수 있도록 설교의 품격이 회복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예전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미국 주류 교회의 예배처럼 예전도 가볍고 설교도 가벼운 예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대안이 아니다. 설교의 비중을 줄이는 것은 설교를 대충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예배가 설교로 인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피하자는 것이다.
개신교의 쇠퇴 혹은 몰락...안타까운 일이지만 교회가 거듭나는 계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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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개신교의 성장과 쇠락을 민도(성도)의 교육수준의 성장에 기인한 목회자 교육수준의 상대적 저하라고 분석하신 의견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진리(Truth)를 설파하신 예수님의 복음은 당시 세상의 교육수준의 우월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살아있는 진리에 의한 성령의 감화감동 역사에 의한 성도들의 거듭남에 기인했다고 봅니다. 교회에선 교육수준, 경제수준 등의 세상가치로 구분짓는 일이, 하나님보시기엔 너무나 우스운 도토리 키재기일테니까요.
결국 믿음은 머리가 아닌 성령에 의한 마음의 움직임이고 진정한 마음의 울림이 있기위해선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12제자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당대의 지식인층에서 사도들을 선발하시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적 우월감은 때론 순수한 믿음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의 쇠퇴는 현대사회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쾌락과 보이는 것들에 매몰된 현대인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봅니다.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작성일
교회에선 교육수준, 경제수준 등의 세상가치로 구분짓는 일이, 하나님보시기엔 너무나 우스운 도토리 키재기 라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강단에 서서 하나님 말씀 전하는 이가 하나님인가요? 신학을 전공한 Professional 아닌가요? 이런 인간을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 아닌가요? 더구나 이 사람의 교육수준이 일반 교인수준에 못 미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어느 목사님의 평가는 옳지 않은가요? 하물며 이 사람의 영적 수준이 형편 없어 자주 분노하는 사람이면 예수님의 부탁처럼 양떼를 메길 수 있을 가요?